20대엔 여기저기서 계약직으로 일했고, 30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정규직이 되었다. 이 역시도 6개월의 계약직을 지나 전환 채용된 것이었다. 정규직이 되었다고 처우가 크게 나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감격했다.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드디어 경계의 안쪽으로 완전히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의자 빼앗기 게임에서 자꾸만 지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내게도 앉을 자리 하나가 완전히 주어진 것 같았다. 의자 주위를 빙빙 돌다가 호루라기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이미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 의자 위에 앉아 있고 나만 우뚝 서서 나의 자리 없음을 확인해야 하는 황망함. 그런 걸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내 의자랄 것을 갖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뎌내야 하긴 했다. '전환 채용 가능성이 있는 계약직'이란 자리는 사람을 비참하고 또 비굴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정규직인 동료들이 연봉 협상이나 회사의 앞날 같은 주제를 꺼내면 나는 순식간에 대화에서 물러나와 관망자가 되었다. 그들의 미래가 나의 미래이기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처지가 엄연히 다르다는 걸 아주 잊어서는 안 됐다. 이 회사에서 나의 존망이 철저히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에서도 눈 돌릴 수 없었다.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에게 적어도 무능한 직원이라는 인상은 주지 않으려고, 혹시나 누군가의 심기를 거슬러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고 나도 모르게 애쓰고 있었다. 그런 나,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잔뜩 웅크린 내가 스스로도 보잘것없게 느껴졌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된 정규직을 1년 2개월 만에 관뒀다. 누군가 이유를 물으면 말문부터 막혔다. 재취업을 위한 면접장에서는 적당한 이유 한두 개를 골라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게 진실과 가깝다고는 할 수 없었다. 사정이 복잡했다. 퇴사하겠다고 한 건 부정할 수 없이 '나'지만 퇴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말은 반만 맞는 것 같았다. 퇴사하고 싶으면서도 퇴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도 가능하다면 직장인의 안락한 삶을 좀 더 오래 누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삶의 기반을 좀 단단하게 다지면서,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라는 걸 굳이 의심하지 않으면서, 무료한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때론 그 안정감을 징그러워하기도 하면서, 그냥 다른 모든 회사원이 그러듯 그렇게 사는 것을 나 역시도 얼마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에서 잃고 있는 것들을 모른 체 하기가 어려웠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한 명씩 회사를 떠났다. 개인 물품이 정리된 깨끗한 책상과 비어 있는 의자를 마주하는 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무실은 동료가 있던 어제도, 동료가 없는 오늘도 아무런 변화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고요했다. 그런 적막함이 내 마음을 더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회사에서의 잦은 이별은 분명 남은 사람 모두에게 심리적 타격을 안기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로 인한 상실감은 각자가 알아서 조용히 처리해야 할 몫으로만 남는 것 같았다. 사사로운 감정이 일에 영향을 주어선 안돼서? 그런 건 프로페셔널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서? 동료가 자꾸 사라지는 일에 대해 함구할수록, 사라진 동료의 존재감과 함께 지금 여기 있는 나의 존재감도 옅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 들고 나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빈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메꾸면 그만이라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진동하는 듯했다. 나는 숨이 막혔다. 사무실 내 자리를 벗어나 혼자 일할 수 있는 다른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점점 더 그렇게 됐다. 내가 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나 자신에게도 샘솟지 않은 지 오래였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실수하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업무는 반복적이고, 책임은 제한적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열심이란 그저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 같았다. 문제가 될 만한 건 시작도 하지 않는 것.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내게 많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업무 초반에는 안심이 되었지만, 일이 손에 익을수록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수하지 않는 대신 사소한 실패나 좌절도, 나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볼 기회도 없어서, 나는 내가 일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조차도 모르게 되었다. 어떨 땐 그냥 퉁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기에는 용기도, 나에 대한 믿음도 없다는 것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나는 나를 탓했다. 일상적인 업무에서도 해야 할 일을 빨리 하면 빨리 하는 대로("다른 동료들 일할 동안 할 게 없어 놀고 있다니"), 늦게 하면 늦게 하는 대로("맨날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기력을 소진했다.
마모된 마음은 신체적 증상을 동반했다.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가슴과 명치 쪽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한 느낌은 당연했고, 어떨 땐 위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있었다. 가끔은 헛구역질하였다. 증상이 비교적 가벼울 땐 약국에 갔고 좀 겁이 난다 싶을 땐 병원에 갔는데, 어디에서든 사무적이고 건조한 말투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주었다. 약국 약이든 처방 약이든 일본에서 사온 카베진이든 하여간 위장에 좋다는 약을 계속해서 먹어도 증상은 괜찮아진 듯하다가 또다시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장기 일부가 회복되지 않고 매일 조금씩 깎여나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일해서 번 돈 약값으로 다 쓴단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등가교환의 법칙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뒤바꾸어서, 잃은 만큼을 보상받고 있는지 자문했다. 내 몸과 마음의 손상을 감수하고 얻고 있는 건 무엇인지. 그만하면 충분한지.
답을 내렸고, 퇴사했다. 2년도 안 되어 다시 무소속의 백수가 되었다. 혹시 직업 없음, 소속 없음이야말로 나의 자리인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꾸 여기로 되돌아올 이유가 없는 것도 같았다.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내가 나를 자꾸만 여기로 데려다 놓는 건 아닌지.
퇴사할 때 어렴풋하게 깨달은 건 내가 나의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의 허락을, 너는 앉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바라며 한평생을 굴려온 것 같았다. 다 지겨웠다. 빈 의자가 운 좋게 내게 주어지기를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푹신한 소파나 침대 위는 어떤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건? 차라리 서 있거나 누워있는 게 적성이지는 않은지? 혹시 다시 의자에 앉고 싶어지는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어디든 내 자리니까. 다 제 자리일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