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커피 축제에 간 적 있다. 혼자서는 부러 찾아가지 않았겠지만 새롭게 알고 지낸 지인이 친해지고 싶다는 제스처로 제안한 것이기도 하고, 익숙한 생활 반경 밖으로는 잘 나가지 않는 나에게 변화가 필요한 것도 같아서 응했더랬다. 축제에 가면 커피를 시음할 수도 있고 원두를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고 했다. 아직 여름이 완전히 떠나지 않은, 날 좋은 9월이었다.
시장 한가운데를 지나 샛길로 빠지고 나서야 축제가 열리는 작은 공터를 발견했다. 주민센터 옆 주차장으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한쪽엔 부스 열 몇 개 정도가 서로 마주 본 형태로 나란히 줄지어 서 있고, 다른 한쪽엔 조그맣게 마련된 간이 무대와 의자 몇 개, 파라솔 몇 개가 놓여있었다. 젊은이들이 기분 낼 때 놀러 오는 동네라 북적이는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아직 시간이 이른 탓인지, 9월치고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어서인지 축제장은 한가했다. 시장에 장 보러 온 마을 주민이 지나가는 김에 슬쩍 한 번 들러보는 것 같은 느슨한 분위기였다.
함께 간 지인은 도착하자마자 눈으로 빠르게 부스를 훑은 뒤에 한 군데 한 군데 빠뜨리지 않고 돌기 시작했다. 과연 이런 곳에 자주 와 본 사람의 태도였다. 혼자였으면 공짜 시음을 연거푸 하기가 민망해서 먼발치에서 부스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별 수확 없이 돌아갔을 텐데, 적극적인 지인 덕에 옆에 바짝 붙어 온갖 시음을 다 하였다.
날은 무덥고 야금야금 커피를 마시다 카페인 과다로 머리가 핑 돌 정도가 되어서 뒤편 파라솔에 자리 잡고 앉아 땀을 식혔다. 곧 간이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될 모양인지 주변이 분주했다. 무대와 가장 가까운 관객석 맨 앞줄에 파라솔도 없이 꽂히는 햇빛을 다 받으면서 앉아 있는 사람들 몇 명이 있었다. 간단히 마실 삼아 나왔다고 하기엔 꽤나 멋을 낸 옷차림이었고, 집 안방에서 티브이 보듯 편안하게 늘어진 자세로 키드득거리며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곧 무대에 설 사람의 친구들인 것 같았다.
아마도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첫 순서로 올라온 가수는 이미 공연 경험이 많은지 뭐든 능숙한 모습이었다. 어려움 없이 멘트를 마치고 노래를 시작하자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두 손 번쩍 들어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고, 가끔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하면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나는 가수 한 번, 가수의 친구들 한 번씩을 번갈아 보면서 아주 머지않은 미래에, 어쩌면 가수가 지금보다 훨씬 유명해졌을 때, 저들이 둘러앉아 술 마시며 그때 너희가 내 공연 보러 와 줬잖아, 너희 없었음 뻘쭘할 뻔했는데 덕분에 했잖아 하며 지금의 장면을 회상하는 것을 상상했다.
더위에 지쳐서인지 무대에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노래는 흘러가게 둔 채로 무신경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혈기 왕성한 지인은 자리를 이탈해 이번엔 체험 부스 모두를 빠뜨리지 않고 돌고선 저 파란 천막에 있는 부스는 꼭 가봐야 한다고 나를 부추겼다. 아로마오일 방향제를 만들 수 있는데 퀄리티가 꽤나 괜찮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향의 에센셜오일 몇 개를 고르면 그걸 조합해 플라스틱 통에 담긴 편백나무 큐브에 뿌려준다고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 하나 손에 쥐면 좋을 것 같아서 순순히 천막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늘어져 있는 오일통 하나하나를 냄새 맡고 그중 세 개쯤을 골랐더니 스트레스가 많으시네요, 호흡기가 안 좋으시네요, 하며 점 보듯 나의 이모저모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아, 그런가요. 맞는 것 같아요. 고개를 주억거리곤 만들어진 방향제 하나를 들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앉았다.
첫 번째 가수의 순서가 끝나고 다음 차례가 되었다. 기타 하나를 둘러맨 사람이었는데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서 있는 자세나 무대 전 멘트가 어딘가 뻣뻣한 것 같기도 했다. 금방 고개를 거둔 나는 이제 아로마오일이 뿌려진 편백나무 큐브가 담긴 컵에 코를 박으면서 여기가 커피 축제인지 무엇인지 다 잊은 채로 정신없이 냄새를 맡았다. 지인의 방향제를 넘겨받아 내 것과 비교하면서 진짜 머리가 맑아지고 코가 뻥 뚫리는 것 같다는 둥 시답잖은 얘길 하였다.
이상한 점을 느낀 건 어느 순간부터 노래 중간중간 같은 가사가 반복되거나 아예 허밍 하듯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안 가 배경 음악처럼 깔리던 가수의 노래가 중단되었다. "죄송합니다." 노랫소리가 끊기고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자마자 무대에 영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나와 주변 사람 모두가 일제히 난처한 표정의 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긴장해서 가사를 잊어버려서요. 처음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상황을 파악하던 사람들이 가수의 말을 듣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바탕 박수가 쏟아졌다. 나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당신의 실수가 당신을 더 주목받게 했어요! 실수 때문에 기죽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공기는 완전히 바뀌어서 사람들은 이제 딴짓하지 않고 가수만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수를 안심시키고 싶은 것 같았다. 그 정도 실수는 별거 아니라고. 우리 모두 지금 이렇게 잘 듣고 있지 않느냐고. 그날의 실수가 그 자신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날 그가 무대에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로 보였다. 그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그와 그의 공연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미끄덩하게 쓱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너무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 되어서 그런 일이 있은 줄도 모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실수를 해서, 실수한 덕분에, 그의 실수를 뒤덮고도 남을 사람들의 요란한 박수 소리가 지금껏 내 뇌리에 남아 필요한 날에 나를 안심시킨다. 누군가는 나의 실수 때문에, 내가 실수하는 사람이라서 나를 응원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