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란 단어를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사전적으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애를 쓴다고 할 때의 '애'는 무엇일까? 창자를 비롯한 신체 내 장기를 가리키던 고유어로 간이나 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노력'을 풀어 쓰면, 삶에서 달성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 심지어 간과 장의 힘까지도 빌려서 써야 한다는 말이다. 괜히 '노오력', '노오오오오오력'으로 늘여 부르는 것이 아니다.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어도 뜯어 볼 필요가 있다. 노력은 '힘쓸 노'에 '힘 력' 자를 쓰는데, 힘쓸 노(努)는 조금 당황스럽게도 종 노(奴)자에 힘 력(力)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뜬금없는 '종'의 등장은 차치하고, '힘'의 반복이 지나쳐 단순히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세상 사람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엔 나같이 힘이란 글자가 덕지덕지 붙은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나는 노력이란 말이 싫다.
에너지 레벨이 낮다. 그렇다는 걸 장장 30년간 나 자신과 지지고 볶고 한 끝에 겨우 알아차렸다. 대학 시절 주변에서 많이들 하던 대외 활동이나 동아리, 해외 여행 같은 건 나도 한 번씩은 경험해 보았고, 그러니 당연히 에너지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 정도, 적어도 평균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걸 몇 해 전부터야 인지하게 됐다. 사실 난 체력은 괜찮은 편인데 에너지는 체력이 아니라 기력 또는 활력의 문제라서, 왕복 열 시간쯤 걸리는 한라산 등반은 별 고비 없이 할 수 있지만 사람 바글바글한 행사장에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가거나 본업을 하면서 부업 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일을 벌이고, 느슨하게 여러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그렇게 수고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그렇지가 않다. 일단 해, 그냥 해라는 말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활력 인간, 무기력 인간에 대한 레퍼런스가 부족하다. 세상이 잘 보여주지 않는 까닭이다. 갓생, 미라클 모닝, 뭐, 이젠 또 미라클 이브닝? 그밖에도 내가 미처 모르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빼곡히 채워 하루 24시간을 밀도 있게 쓸 것을 독려하는 각종 용어들만이 난무한다. 그런 노력을 대체 '어떤 삶'을 위해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실은 저들도 모르고, "저스트 두 잇"이라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 곤혹스럽고. 나같은 사람은 정말로 사는 게 녹록지 않다. 그래서 몇 해 전 어느 컨퍼런스에 갔다가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유명세를 탄 김영민 교수가 자신의 에너지 없음을 고백하면서 "저는 사실 이 자리에도 간신히 서있습니다"라고 얘기했을 때 얼마나 위로 받았는지 모른다.
"고르고 고른 두 잇"이란 말이 있다. 유튜버 침착맨이 의욕이 없다는 시청자의 고민 상담을 해주면서 한 말인데, 말인 즉슨,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겐 한 번 시도하는 것도 엄청나게 큰 일이기 때문에 무엇을 무작정 시작하는 것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도한 일이 잘 끝나지 않았을 때의 내상이 상당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니라 무조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서 이 일의 당위성, 이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충분히 생각해보고 마침내 납득한 후, 그걸 동력 삼아 움직여보라는 조언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 어떤 어른도 "일단 해봐"에서 벗어난 조언을 해주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침착맨의 그 말이 아주 새로웠고,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도 있어야지, 했다.
노력이란 말이 싫은 건 내가 나의 노력을 충분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고3 수험생활을 할 때에도, 대학에 들어가 성적 관리를 위한 시험이나 과제에서도 나는 내가 충분히 노력했던 것 같지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너 그때 열심히 했지"라고 말할 때에도 그걸 과연 열심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 정도 열심은 너무 평범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던 것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 나는 글이 쓰고 싶다고 고백하면서, 그런데 꿈이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열심이지 않다고, 그건 사실 이게 진정한 꿈이 아니기 때문인 걸까라고 말해본 일이 있다. 친구는 너의 열심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대학 때부터 너는 항상 나보단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그제야 생각했다. 나의 열심은 무엇인가. 나의 노력은 무엇인가. 왜 나의 노력은 충분하지가 않은가. 내내 그런가.
데미 무어는 영화 <서브스턴스>로 작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 생활 45년 만에 처음으로 받는 연기상이라고 했다. 30년 전 어느 프로듀서가 너는 '팝콘 배우(영화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흥행에는 성공하지만 연기력이나 작품성 면에서 평가받지 못하는 배우를 비유적으로 부르는 말)'라고 한 말을 스스로도 굳게 믿었다던 데미 무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고,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다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 순간에 한 여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거예요.'" "You will never be enough." 이 말을 자꾸 떠올린다. 나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내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늘 그랬다. 그럼 난 대체 언제 충분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 억울해진다. 언제고 충분한 사람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