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님, 안녕하세요. 도브리예요.
폭염이란 단어에 걸맞는 사나운 더위를 지나왔네요. 저는 더위와 습도에 취약한 인간인데, 제 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한여름에 오래 외출해있다보면 인내심이 바닥 나 괜히 옆 사람에게 짜증을 내게 되더라고요. 올 여름엔 그런 저를 인정하고 별 이유없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으면 주변 사람에게 내가 지금 기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설명도 해보고, 너무 힘들어지기 전에 미리 근처 편의점에서 차가운 물 마시며 한 숨 돌려도 보고, 이도저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운 날엔 누구를 만나는 대신 실내에 머물며 혼자 시간을 보냈어요.
점차 달궈지는 공기가 부담이 되어서인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몸 웅크리고 있다가 해가 서서히 떨어질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활동을 시작하고는 했어요. 늦은 시간에 몸을 움직이니까 자연스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 무기력하고 게을러진 것 같아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저 말고도 비슷하게 수면 패턴이 바뀌었단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이것도 동면동물의 겨울잠 같은 거라고, 계절이 변하면 나의 생활 리듬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변화에 무관한 몸은 없을 텐데도 왜 나의 몸에겐 자연에 반하라는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는 걸까요.
요즘은 우치다 타츠루라는 일본 사상가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습니다. 출간한 책만 100여권에 이를 정도로 다작가라고 하는데, 서로 엇비슷한 것 같지만 개중에 '아 이걸 왜 이제야 읽었지' 싶은 번뜩이는 내용이 있어서 약간의 오기로 그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어요. 우치다 타츠루는 소통을 골자로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사람인데요. 아니, 상관 없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 모든 건 소통의 문제라는 걸 일깨우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그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스스로를 무도가라고 소개할 만큼 합기도 수련에 열심이라는 점이에요. 사상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글을 읽고 쓰는 데 몰두하느라 몸을 등한시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우치다 타츠루는 '내 신체와의 소통'에도 지극한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읽은 책만 봐도 '몸' 또는 '신체'를 언급한 횟수가 빈번하고요, 아예 <소통하는 신체>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어요. <곤란한 성숙>이란 책엔 이런 문장이 적혀있더라고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할 때 자연스레 몸이 움직이는 경우와 '논리'를 갖다 붙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논리를 갖다 붙여야 몸이 움직이는 것은 집착입니다. 신체가 싫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 적절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언제나 '살아가는 힘'의 증감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힘이 강해졌는지, 아니면 억눌려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선 우선 내 몸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요새 꽤 열심히 아르바이트 지원을 했는데도 연락 오는 곳이 없어서 생활비 걱정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돈 걱정 할 때면 지금 나를 불안정한 노동으로 이끈 과거 모든 선택을 부정하고 싶어지는데, 지난 몇 년간 나의 선택이 적어도 나의 신체에는 정직했다는 걸 상기하면, 덕분에 생의 의지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낙관하게 돼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되지, 하고요. 이렇게 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요. 자꾸 잊어버리지만요.
날씨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name%$님, 집에서 키우는 화분 속 식물의 생장을 독촉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인 나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운 시간 보내길 바라요. 그럼 우린 2주 뒤 만나요!
고맙습니다.
도브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