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공장 인력을 관리하는 총무에게 '지금처럼 매일 나오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하며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관두면서도 단기 아르바이트는 앞으로도 짬짬이 하게 될 줄 알았다. 같이 일하던 직원분이 치약을 한 아름 챙겨주며 "또 와"했을 때도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막상 연락이 왔어도 일하러 갈지 말지를 고민하긴 했을 것이다. 공장에서 멀어진 뒤로 손가락과 손목이 아프지 않고 전처럼 귀가 먹먹하지 않아 좋다. 육체적으로 편안하다. 몇 개월 전의 나는 그 고단함을 어떻게 견뎠나 싶다.
어쩌다 보니 치약 공장에서 8개월을 보냈다. 그 기간 내리 일한 것은 아니고, 첫 몇 개월은 작업량이 몰리는 시기에 잠깐씩 단기로 투입되다가 언젠가부터 연휴를 제외하고 거의 쉬는 날 없이 쭉 일하게 됐다. 공장은 늘 인력이 부족해서 삼사일 근무로 알고 갔어도 다음 주, 그다음 주로 계약이 연장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새로 직원을 구할 예정이라더니 내가 풀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총무는 신입 직원 채용에 손을 놓은 듯했다. 나에겐 잘된 일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잃었던 여유를 되찾았다. 돈 쓰는 일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도 함께 넉넉해졌다.
생활비에 쪼들려서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게 작년 여름이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리 몇 군데를 아르바이트 어플에 보이는 대로 지원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건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상대가 "알바 지원하셨죠?"라고 물었을 때 나는 수많은 지원 목록을 떠올리며 당황한 채로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러는데 정확히 무슨 알바죠?"라고 되물었다. 연락받은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생산직 아르바이트로 치약 공장에 출근했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이런 공장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다 하다 치약 공장에까지 와보는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공장의 생산 현장이라는 곳은 건조하고 칙칙했다. 현장 벽엔 '불량품은 받지도 만들지도 보내지도 말자'라고 적힌 현수막이 크게 붙어있었다. 직원들은 처음 온 날 보고도 본체만체하며 자기 할 일만을 했다. 지나가는 직원 한 명을 붙잡고 새로 온 알바생이라고 소개하자 장갑과 위생모를 챙겨주었다. 손에 꽉 끼는 장갑과 위생모의 고무줄 때문에 손목과 머리가 지그시 조여왔다. 의자 하나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길래 그렇게 했더니 곧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며 낱개 포장된 치약을 눈앞으로 뱉어대었다. 내가 할 일은 그 치약들을 가지런히 모아 택배 상자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게 다였다.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가 주는 청각적 부담을 견디면서 기계의 속도에 맞춰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계속하는 것.
작업은 단순하고 지루했다. 시간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게 흘러갔다. 저 멀리 붙어있는 벽시계나 눈앞의 작은 디지털시계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현재 시간을 알게 될 때마다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십 분쯤 한 것 같은데 고작 삼 분이 흘러있고, 다시 십 분은 한 것 같은데 이번엔 오 분이 겨우 흘러있고 그랬다. 나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은 시간이 견딜 만한 속도로 가는 것 같았다. 그간 정신 건강을 위해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지켜온 것들을 의도적으로 소환하였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하기. 지난 과거를 곱씹고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기. 그러나 생각의 꼬리를 무는 일도, 과거와 미래에 사는 일도 이제는 전처럼 쉽게 되지가 않았다. '내가 변했구나.' 그제야 체감하였다.
공장 사람들은 대체로 말수가 없었다. 눈짓이나 손짓으로 말을 대신했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거나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우면 다른 사람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조용히 그 자리를 메웠다. 그들이 소리 없이 다니느라고 나는 내 옆자리가 잠깐 빈 것도,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운 것도 알지 못하는 때가 부지기수였다. 직원 모두가 빈구석이 없이 유기적으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한 명 한 명이 베테랑처럼 보였다. 기계가 치약을 찍어내는 동안 직원들은 튜브에 치약이 적정량 들어갔는지, 튜브 끝과 포장지에 유통기한이 잘 찍혔는지-숫자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잉크가 번지지는 않았는지-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 세심함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곳에서 치약은 모두의 책임감, 어쩌면 자부심인 것 같았다. 내겐 별거 아닌 것에 한참 품을 들이고, 때론 심각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작 치약'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반성했다. 사람이 하는 일에 '고작'이라는 건 없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진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점심시간이 되고, 쉬는 시간이 되고, 퇴근 시간이 되면 나는 오늘도 하루가 갔음에, 일급을 벌었음에 안도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뛰쳐나갔다. 이마에 난 위생모 자국을 가리려고 모자를 눌러쓴 채로 글쓰기 모임이나 책 모임에 갔다. 가서 읽고 쓰고 말했다. 모두 공장에선 잘 하지 않는 일들이었다. 금요일이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두툼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가 소매 아래로 손목이 드러날 때엔 흠칫하였다. 줄 하나가 선명하게 움푹 패어 있었다. 하루 종일 장갑을 끼고 있느라고 생긴 자국이었다. 그럼 나는 그걸 들여다보다가 걷었던 소매를 다시 길게 잡아 늘여 보이지 않도록 완전히 뒤덮고는 하였다.
이제 나의 손목과 이마는 옅은 빗금 하나 없이 매끈하다. 그런 자국이 나에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공장에서의 시간도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예 다른 세계의 일처럼 나와 아주 무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정확히는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갓 나온 치약이 따끈하다는 사실이 신묘하게 여겨졌던 것. 가지런히 열 개씩 착착 쌓아 올린 택배 상자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 현장 밖에서 대기하면서 직원분과 라디에이터에 두 손대고 있던 것, 사실 열기가 너무 약해서 손이 하나도 데워지지 않고 있었는데 손을 떼면 얼른 다시 갖다 대라고 해서 그냥 그대로 두었던 것. 시무식 날 점심에 나눠준 코스트코 떡볶이와 피자 한 조각을 휴게실에서 침묵 속에 먹으면서 이상하게 소풍 온 기분이 됐던 것. 가끔 기계 끝에 혼자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때때로 행복감이 차오르던 것. 현장 전경을 눈에 담으며 언젠가 이 순간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고작'인 줄 알았던 것. 사실 '고작' 아닌 것. |